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 Update : 2022.6.25 토 00:39
일간전북
로그인  |  회원가입
오피니언독자기고
마음의 의학이 최고의 의학(2)
전홍준 원장  |  knskj@kns.tv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1.11.28  15:50:0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전홍준 원장
[전홍준 원장]다음은 마음의 의학이 최고의 의학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몇 가지 임상사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58세 부인 S씨. 1993년 봄, 부인은 한쪽 유방에 만져지는 몽우리를 진단 받기 위해서 찾아 왔습니다. 암이 아닌가 싶어서 지난 밤을 뜬 눈으로 샜다는 것입니다. 알밤만한 크기로 딱딱하게 만져지는 것이 암이 의심될 만했습니다. 조직검사를 포함해 여러 가지 검사를 시행했는데 결과는 본인이 걱정하던 대로 악성종양이었습니다.

환자와 가족들은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지 않느냐면서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현대의학에서는 그동안 암에 대한 최선의 치료법으로 조기진단, 조기수술이라고 줄곧 홍보하고 있으니까 수술을 재촉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겠지요. 그러나 이 환자에게는 수술에 앞서 더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환자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특별한 인상도 있었지만 다음과 같은 과거의 병력 때문이었습니다.

1. 약 15년 전부터 심한 두통으로 시달리고 있는데, 여러 병원에서 뇌에 대한 정밀검사를 받았으나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해 편두통으로 알고 치료하고 있다. 양ㆍ한방에서 장기간 치료했으나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지금은 특정한 진통제에만 의존하고 있는데 이 약을 매일 서너 차례씩 먹은 지가 10년이 넘는다.

2. 13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심한 하혈로 쇼크 상태에 빠져 산부인과 병원에 입원, 기능성 자궁출혈이라는 진단 하에 자궁절제술을 받았다.

3. 9년 전 갑상선 종양으로 한쪽 갑상선 절제술을 받고 수술 후 2년간 갑상선 호르몬을 투여 받았다.

4. 4년 전 허리에 디스크 탈출증으로 디스크 수술을 받고 그 후 장기간 물리치료, 지압 등으로 치료하고 있지만 심한 요통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5. 약 10년 전부터 고혈압과 당뇨 때문에 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치료받고 있다.

6. 이 외에도 지방간, 만성위염, 만성방광염, 견비통 때문에 가끔 양ㆍ한방을 왕래하며 치료를 받고 있다.
사정이 이쯤 되고 보니 주변 사람들은 이 부인을 병 보따리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런 판에 또 유방암이 생긴 것입니다.

그동안 두통이나 요통에는 진통제로, 자궁출혈에는 자궁절제술로, 갑상선 종양에는 갑상선 절제술로, 디스크 탈출증에는 디스크 절제술로, 고혈압에는 혈압강하제로, 당뇨에는 혈당강하제로, 지방간에는 간장약으로, 만성위염에는 제산제나 소화제로, 방광염에는 항생제로...이런 식으로 치료해 왔습니다. 이제 또 유방암이 생겼으니 유방을 절제할 차례가 된 것입니다.

이 부인에게는 왜 이처럼 수많은 질병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잇따라 나타나고 있을까요? 이 분이 질병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이 없을까요?

이 부인은 스무 살 때 결혼했는데 남편은 6ㆍ25때 혈혈단신 북에서 피난 온 청년이었습니다. 남편은 건축청부업에 종사했는데 결혼 초 고생도 많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럭저럭 먹고 지낼 만큼 여유도 생겼습니다. 제법 큰 건설회사로부터 청부 일을 맡기도 해서 일이 잘 되어 간다 싶었는데 어느 날 너무도 큰 어려움이 집에 몰려왔습니다. 큰 공사를 따 내려고 돈을 무리하게 동원해 어느 건설회사에 투자했는데, 그 회사가 부도를 내고 도산해 버린 것입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더구나 남편은 북에서 홀로 내려 온 사람이라서 어려움을 나눌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살고 있는 집마저 압류되어 셋방으로 옮겨 가야 했고 생존을 위해 남편은 막노동판으로 부인은 바구니 장사로 나서야 했습니다.

당시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아이들의 학비를 제대로 댈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도산한 건설회사에 찾아다니며 아무리 사정을 하고 원망해도 돈을 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분해서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고 밤이면 단칸방에 누워 자고 있는 자식들을 볼 때마다 서글퍼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부인은 불면증과 두통으로 시달리기 시작했고 얼마 후 남편은 뇌출혈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여 위기를 모면했지만 수족의 마비 때문에 정상적인 활동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때로부터 약 2년 후 부인은 자궁출혈 때문에 자궁절제수술을 받게 되고 그 후 계속해서 이 병 저병이 잇따라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 부인과 남편의 몸에 나타난 끈질긴 고통의 씨는 마음의 고통입니다. 이 부부의 의식에는 삶에 대한 두려움, 피해의식, 분노와 같은 어둡고 고통스런 신념이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이것으로부터 같은 성질의 상념과 감정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감정의 불편함이 표현되지 못하고 오랫동안 억눌렸던 탓으로 그 불편한 감정이 몸의 불편함으로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표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 부부는 마음의 위안을 얻어 볼 셈으로 교회에 나가고 있었지만 뿌리 깊은 불안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긴 세월 눈물겨운 고생 끝에 자녀들이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얻게 되었고 집안 살림도 다시 안정을 되찾았지만 부인의 마음 속 깊은 상처는 계속해서 몸에 병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부인에게 그와 같은 병 보따리가 끈질긴 감정의 불편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부인도 전적으로 이에 수긍하였습니다. 아플 때마다 부인 스스로도 자기 마음이 병통이라고 짐작을 했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자식들은 서울의 어느 유명한 암센터에 입원할 것을 종용하였지만 부인은 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입원 첫날부터 그녀의 의식 속에 뿌리박힌 두려움, 원한, 분노, 슬픔의 감정을 소멸하고 특히 자신이 희생자라고 하는 신념을 지우도록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낮에는 주로 산책을 하면서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15년 전의 충격적인 사건을 떠올려 다시 경험하도록 했습니다.

그동안 그 뼈아픈 기억이 되살아날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늘 외면하려고 애써 왔지만 이제는 그 사건과 관련된 온갖 고통스런 감정들, 억압해왔던 느낌들을 의도적으로 꺼내서 크게 확대하여 표현토록 했습니다.

산책길에서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원망과 분노의 대상들, 일체의 고통스런 감정들을 낱낱이 떠올려가며 그 감정 그대로를 크게 표현하며 다시 경험하도록 했습니다. 자신을 줄곧 희생자로 여겨왔던 신념, 자신을 비천한 사람으로 보아왔던 생각들도 노출시켜 큰 소리로 표현했습니다. 산책길에서 돌아올 때는 원망의 대상들과 자기 자신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속삭이며 축복했습니다. 방에 돌아와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들, 귀에 들리는 온갖 소리,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이 다 좋고 아름답다고 일부러 생각하며 느끼게 했습니다.(이 방법은 신념, 상념, 감정 다루기의 하나인 “화해와 축복의 산책”이라는 방법임)

밤에는 전깃불을 끄고 촛불 하나만 밝힌 채 촛불을 바라보면서 “아무개 씨, 당신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가장 원망했던 대상들에게 수없이 반복하여 축복을 보냈습니다. 그 촛불이 다 타서 저절로 꺼질 때까지 너댓 시간씩이나 계속했고 촛농이 녹아내릴 때마다 원망과 서러움이 녹아내린다고 상상하며 마침내 촛불이 꺼질 때는 그것이 모두 사라졌다고 믿기로 했습니다(이 방법도 신념, 상념, 감정 다루기의 하나인 ‘감사의 마음 회복하기’임)

이 일들이 심신에 얼마만큼의 변화를 가져다주는가는 이처럼 실제로 해보지 않은 사람의 머리로는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분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편한 생각과 감정을 다루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녀는 입원한 지 6일째 되던 날 밤 뜨거운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며 온몸이 전기로 감전된 것 같은 어마어마한 전율을 경험했습니다. 그날 밤 오랜만에 깊고도 편안한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심신이 완전히 이완되어 너무도 편안해진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날부터는 매 식후 30분 이상씩 거울을 보며 일부러 미소 지어 웃는 연습도 병행했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하다”고 자기암시를 했습니다.(이 방법도 신념, 상념, 감정다루기의 하나인 “웃기연습”임)

십 수년 동안 한 주먹씩 먹던 약을 모두 끊었습니다. 이제 그 끈질긴 두통도 완전히 사라지게 되어 하루도 먹지 않고는 못 배기던 두통약까지 끊게 되었습니다.

그 후 곧 퇴원하게 됐는데 나는 이 부인에게 며칠간의 단식과 몇 달 간의 생식(生食)을 하도록 권유했고 그는 이에 충실하게 따라 주었습니다. 내가 이처럼 권유한 이유는 단식과 생식이 장기간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약물중독으로 오염된 세포들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물리적 효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빠른 시간 내에 몸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퇴원 후 석 달 만에 환자와 가족들이 다시 찾아왔는데 지금까지의 치료방법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지만, 그래도 종양만은 수술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환자도 그렇게 하고 싶어 했으므로 나는 다시 입원시켜 유방암 절제술을 시행했습니다.

이제 수술 받은 때로부터 만 5년이 되었습니다. 이 부인은 그동안 어떠한 약물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그녀의 마음은 고요하고 편안해졌으며 지방간, 위염, 요통, 두통, 방광염 등 모든 병증도 다 사라졌습니다. 나는 이 분이 편안한 마음을 계속 간직해 간다면 유방암도 재발하지 않을 것이고 몸을 괴롭히는 어떠한 병도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부인이 신념, 상념, 감정 다루기를 하지 않은 채 종래와 같이 단순히 약물과 수술로만 치료했다면 지금 어떤 건강상태에 있을까요?

-전홍준 원장 약력-
의학박사, 외과전문의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역임(외과학)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의과학센터 연구교수(의학사 및 의학철학)
한서대학교 건강증진대학원 교수 역임(대체의학)
차의과대학교 대체의학대학원 초빙교수
(현)조선대학교 보건대학원 대체의학과 초빙교수
(현)하나통합의원 원장

-저서
1)완전한 몸, 완전한 마음, 완전한 생명(1998,에디터 출판사)
2)경이의 초소식요법(2000, 정신세계사)
3)새로운 의학, 새로운 삶(공저, 2002, 창작과 비평사)
4)유쾌한 쾌요법(2005, 에디터 출판사)
5)새로 찾는 생명, 21세기 건강에의 길(2005년, 에디터 출판사)
6)보완대체의학의 임상응용과 실제(공저, 2010, 한국의학사)

 

< 저작권자 © 일간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전홍준 원장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자유게시판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제호:일간전북 | 등록번호:전북 아00054 | 등록년월일 : 2011.08.10
발행인: 육화봉 | 편집인 : 육화봉 | 전화:0505-670-7000 | 팩스0505-670-0404
우)561-830 전주시 덕진구 건산로 150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정훈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양두식
Copyright 2011 일간전북, KNS. All rights reserved. [문의메일] jb@jbk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