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생각이 바뀌며 ‘성숙’한다.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 이기심을 극복하는 용서, 생을 관조하는 넉넉한 자세 등을 어느 정도 체득하기 마련이다. 젊은이가 어른처럼 성숙하게 되는 데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반드시 어떤 고통이 따른다. 성장 과정에서 어떤 중대한 경험(시련)을 겪게 되고, 그 아픔을 이겨 낸 만큼 더 튼튼하고 현명한 사람으로 성숙하게 된다.

‘이니시에이션(initiation)이란 용어는 원래 비교종교학, 문화인류학과 같은 인접 학문을 통해 퍽 낯익은 것이 되었다. 인간은 일생 동안 여러 가지의 의례들, 예컨대 돌잔치, 성인식, 회갑연, 칠순 잔치, 장례식 같은 특별한 의식을 치르며 살아간다. 인간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이러한 통과의례(rites passage)를 치르며 살아온 것이다.

여러 의례들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성을 띠고 중요시 여겨지는 건 ‘성인식’일 것이다. 사춘기의 젊은이는 성인식을 치름으로써 당당히 성인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인데, 이러한 문화의 잔존물이 젊은이의 입영훈련이나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M.T. 그리고 신입사원에게 부여 되는 수련회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프리카의 캄바족을 비롯해 여러 종족의 성인식에 대한 보고를 보면, 성인식 후보자들은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숲 속 외딴집에 격리 수용된다. 이는 지금까지 부모의 보호 속에 자라 온 의존성을 완전히 탈피하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단체생활을 통해 축소된 사회 생활을 경험하는 것이 된다. 이들은 장애물과 무서운 괴물이 출현하는 곳을 통과해야 하고, 창을 들고 맹수를 향해 돌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인은 부족의 생존을 위해 용감하게 적과 싸울 줄 아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제의적 성교를 통해 육체적 성숙과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 지적 성숙을 이루기도 한다. 그리고 신 앞에서의 성이 매우 신성한 것임을 인식토록 하기 위해 신성수 아래에서 성기에 가벼운 상처를 내도록 했다고 한다. 이러한 모든 고통의 과정이 끝나면 젊은이들은 이제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모되어 가정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결혼할 자격과 성인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부여 받는 것처럼, 하나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실존의 틀 속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흔히 인생의 아름다움만을 꿈꾸어 오던 이들은 죽음의 공포를 목격하거나 장애에 부딪혀 상실의 고통을 맛보아야 하고, 사회의 추악한 타락상을 목격하게 된다. 이로써 인생이란 무지개빛 처럼 결코 화려하지만은 않은 것이라는 인식에 이른다. 인간은 누구나 유년을 상실한다. 동화 같기만 한 꿈을 잃고 살게 된다. 순진무구했을 때 행복한 것이지 바깥 세계를 알게 될수록 절망만 커진다.

 단단한 쇠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에 달궈 온 힘을 다해 두드려야 하듯, 성숙한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련의 과정이 따른다. 인간이 괴로움을 겪는 일은 누구나 피하고 싶다. 그러나 거기에도 역설이 있다. 아픔의 상황을 이겨내고 초월하는 고통의 과정 속에서 자신을 보다 튼튼히 키워 낼 수 있는데, 이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몬느 비에른느에 따르면, 통과제의는 ‘존재론적 위치의 변화’라는 공통적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른바 통과제의는 인간 영혼의 보편적 성향인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은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원시시대가 아닌 현대에도 우리네 생활 현장 곳곳에 스며들어 의식이 되풀이 되곤 한다. 제의를 통해 충족되던 인간의 행동은 오늘날도 자연스럽게 모든 문화 속에 끊임없이 녹아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