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민 기자] 누군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을 했었다. 지금 한국 진보정치가 딱 그 꼴이다.

겉으로는 통합을 외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이해타산에 따라 분열하는 한국 진보 정치. 그들에게 통합은 가능할 것인가.

1959년 죽산 조봉암이 간첩죄로 사형 당한 이후 한국 정치에서 ‘진보’, ‘좌파’는 금기시 되어 왔다. 모두들 한국에서 향후 100년간은 진보정치가 자리 잡기 힘들 것이라고 했었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첫 원내진출에 성공했을 때 사람들은 한국정치의 역사적 발전이라며 크나큰 의미를 부여했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기성 제도권 정치와 다른 진보정치의 참신함에 열광 했었고 민주노동당은 한국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라던 ‘진보정치의 제도화’를 이루어냈다. 죽산 조봉암의 죽음이후 45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그러나 2008년 민주노동당은 대북문제를 둘러싼 파벌간 다툼과 노선간 내부 투쟁으로 인해 분열했고 많은 이들을 좌절 시켰다. 당시의 분열에 실망해 보수로 전향(?)한 이들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그 실망이 얼마나 컸는지는 미루어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당시 가장 우려됐던 부분은 힘겹게 이룬 진보정치의 제도화와 대중화를 지체 시킬 것이라는 점이었다. 아직 뿌리 내리지 못한 한국 진보정치가 고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결코 기우는 아니었다.

분열 이후 지난 7년여 간 한국의 진보 정치는 크고 작은 시련에 직면해야 했고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은 결국 ‘다르게 또 같이’라는 모순된 모습으로 불안한 연대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라고 했던가. ‘보수집권’이라는 공공의 위기 앞에 진보와 중도진보 나아가 중도파까지 연대를 모색하며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러한 연대의 성과는 선거를 통해 확인되며 통합은 어느덧 한국진보의 지상 과업이 됐다.

그러나 이질성을 메우지 못한 채 진행되는 통합작업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낳으며 또 다른 분열을 만들고 있다.

지난 총선 이후 꾸준히 진행되어 온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논의는 국민참여당이라는 변수 앞에 결국 좌절됐고 진보신당은 독자노선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반발해 노회찬, 심상정 두 상임고문이 급기야 진보신당을 탈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물론 이들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은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민노당에서도 강기갑, 권영길, 천영세 전 대표 등이 민노당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강력하게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통합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이들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진보정치의 세력화 역시 모색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3지대에서 만나 하나로 통합을 이루겠다는 복안인 것이다.

통합을 얘기하면서도 끊임없이 분열하는 한국 진보정치의 현실에서 통합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묻게 된다. 아울러 반드시 통합만이 진보의 살길인지 역시 묻게 된다.

정치라는 것이 생각과 정책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당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를 통해 집권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상을 펼쳐나가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한다고 했을 때 ‘다르게 또 같이’라는 진보의 모순된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선거에서의 승리만을 위해 진보의 순수성을 해쳐가면서까지 ‘대통합’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조금 늦더라도 진보의 순수성을 지키며 한 발짝씩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먼 미래를 봤을 때 진보정치가 이 땅에 튼튼히 뿌리내리는 방법이 아닐까.

보다 순수하면서도 성숙된 한국 진보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