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탯줄이 떨어졌어요.
열 달 동안 아이를 먹이고 키웠던 굵은 탯줄이
세상에 나온 지 5일 만에 마른 이파리처럼 톡! 하고 떨어졌어요.
말라비틀어진 탯줄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뚝 흘러요.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어요.
내 안에서 한 생명을 키워냈다는 증거가 사라지는 게 서럽다거나
뱃속에서 꼬물거리던 생명의 느낌이 벌써 그립다거나
그렇게 한 줄로 정리할 수 없어요. 그렇게 설명될 마음이 아니에요.
무거운 추를 단 것처럼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에요.

아이 청력이 완성되면 뱃속에서 엄마 아빠 목소리 다 듣는대요.
그래서 태담도 열심히 했어요. 하루 종일 중얼중얼 아이에게 말을 걸었어요.
그런데 막상 태어난 아이에게 엄마 목소리는 아웃 오브 안중이에요.
‘응? 이건 내가 뱃속에서 열라 듣던 엄마 목소리 아님? 엄마 방가방가(미소)!’
‘역시 엄마 품이야. 안아주는 건 아직 불편하지만 그래도 익숙한 엄마 냄새 쵝오!(윙크)!‘
뭐 이 정도를 바란 것은 아니었어요.
0.5초의 귀 기울임? 비디오판독으로나 판별 가능할 정도의 고개 갸웃거림.
그런 아주 미세한 ‘아는 척’을 기대했던 나는
엄마가 아무리 말을 하고, 안아줘도 울기만 하다가
숙련된 조리사님 품안에 가서야 울음을 그치는 아이에게 배신감을 느껴요.

꿈을 꿔요.
꿈속에서 나는 아이였다가 여자였다가 심지어 남자가 되기도 해요.
하지만 엄마가 되는 꿈은 꿔 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 눈을 뜨면 옆에 웬 아이가 누워있어요.
잠결에 잠시 이 아인 누구더라? 해요.
아 맞다. 내가 낳은 아이잖아. 해요
어디부터가 꿈인지 어떤 게 현실인지 실감이 안나요.
달빛이 스민 방에서 잠든 아이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봐요.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이 아이의 엄마다. 라고
생각하면 너무 두렵고 가슴이 답답해요.
이것은 책임감일까요. 부담감일까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마냥 사랑스럽다, 축복이다 기뻐할 수 없는
스스로를 보며 무거운 마음에 또 죄책감이 더해져요.
이렇게 철없고 겁 많은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초조해져요.
되풀이되는 상념과 두려움. 그리고 끝없는 우울함.
어두운 마음을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해요.
그렇게 아이를 품에 안고 지독한 외로움을 경험해요.

그때의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에요.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아이와 사랑에 빠질 수 없었어요.
모성은 진정 본능인가 궁금했어요.
아이는 탯줄을 끊은 순간 제 인생 사는 건데
정작 감정의 탯줄을 끊지 못했던 건 엄마인 나였어요.
하지만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니
어제보다 오늘이 더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네요.
그때의 감정은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났는지 아직도 미스터리.
하지만 육아라는 길고 긴 레이스에서
쉽게 쓰러지지 않도록 마음을 단련한 시간이라고 안위해요.

잘은 모르지만
엄마가 된 내 인생의 책에서
시련의 분량은 반이거나 그 이상이겠죠.
이제 겨우 페이지를 시작한 것 일텐데 유난떨 수 없어요.
그래도 나머지 절반의 페이지에는 소소한 행복과 사랑이 씌여질거라 믿고
알 수 없는 인생, 힘을 내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