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성덕용

신트리 사랑가

성덕용

정랑고개를 넘어오는 바람이 그대 눈을 시리게 했나요
목동 신시가지 높아진 빌딩을 넘던 햇살이
그대 가슴을 찔렀나요
그대 옷섶에 물결이 일렁이네요

차라리 미친듯 퍼붓던 그대의 말들을
이제 기다림은 어인 일인지

안양천의 물병아리 어미 찾아 울음 웁니다
흐느끼는 그대 심장의 소리 들립니다
물풀은 노를 젓고 하늘은 붉습니다

꽃이라 이름하여 작은 꽃과 큰 꽃이 있더이까
그대가 내게 그러하리이까
하늘입니다, 대지입니다
그대가 내게 그러하리이다

거친 돌이 꽃의 정수리에서 흩어지듯
날카로운 가시가 그대의 눈에서 멀어지듯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여도
사랑하는 것이 내가 아님을
오롯이 그대의 사랑을 누리는 것뿐임을
이렇게 해어름에
정랑고개를 넘어와 신트리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 바람으로 고백합니다

'사랑입니다'
'나는 그대의 사랑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성덕용

저 앞에 그림자로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 뒤를 몸둥이로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어쩔까? 정말 어쩔까?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가 갖고 있는 생각들이

혹여 '나'가 아닐까 하는

잎새의 바람이 스쳐간다

아침 저녁으로 길어진 그림자를 보며

저것이 '나'일 것이라고

꿈의 꽃을 피웠었다

또는 그것의 절망을

비바람 속의 잎새처럼 흔들리기도 했다

어쩔까, 정말 어쩔까?

몸둥이일까, 그림자일까?

쉽다. 그러나 쉽지 않다.

'나'는 '나'를 설겆이 하는 것일까?

이제도 앞선 그림자를 좇고 있다.

노간주나무

성덕용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함께 술을 마시고 '좋은 곳이 있다'하여
안내하는대로 좇기만 하였다
이쪽으로 가자 하면 가고
저쪽으로 가자 하면 가고
이길로 들어서자 하면 들어서고
저길로 꺾어지자 하면 꺾어지고
늘 한 걸음 앞에 가며
휘젓는 그의 손짓대로, 발길대로
좇았다. 막다른 골목길이다.

'오줌이나 누고 가자.'
그래서 생각했다. 그의 '좋은 곳'은
'오줌을 눌 수 있는 곳'이라고

그는 '의미심장하게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가자' 하고 돌아섰다
'오늘은 나한테 맡겨.'라고 외치며

네온사인의 글자들이 가물가물해지고
스치는 물상(物像)들이 커졌다 사라지고
기어코는 거대한 빌딩의 모서리에 섰다
도심에서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노간주 나무에 얼굴을 들이박으며
'가자, 가자' 외치는 그의 겨드랑이를 잡았다

그의 겨드랑이에는
그의 어린날 꿈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삐죽삐죽 솟다 만 날개가
살아 있었다

그가 처음 '좋은 곳'이라 하였을 때
그려지던 허다한 것들은 갔다
그와 술을 마셨던 '이제껏'과
손짓 발짓대로 걸어 온 길
그것이 전부였을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노간주나무가 왜 얼굴을 찌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