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영 변호사]최근 저는 음주 뺑소니 사고 이후 7년간 도망 다니다가 공소시효 만료 18일을 앞두고 기소된 어느 30대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도망가지 않았다면 피해자의 상해 정도가 중하지 않고(전치 3주) 피해자와 합의를 했으므로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 받을 수 있었을 것인데, 두려움 때문에 도망 다니다가 결국에는 실형을 선고받게 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지난 7년간 비록 신체는 자유로웠으나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정신적 징역살이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고, 기사를 보자마자 “어이구 어쩌다가”라는 탄식을 저도 모르게 내뱉었습니다.

공소시효란 검사가 일정기간 동안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에 국가의 소추권을 소멸시키는 제도입니다.

최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공소시효에 관한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이른바 ‘이태원 살인 사건’입니다. 유력한 용의자인 미국인 아더 패터슨이 미국에서 체포되어 범죄인도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소시효 완성시 까지 불과 6개월 밖에 남지않은 아더 패터슨을 과연 우리나라 법정에 세울 수 있는지 설왕설래하고 있습니다.

아더 패터슨은 1997년 4월 3일 서울 이태원동의 한 햄버거 가게에서 당시 홍익대 재학생이던 조모씨가 흉기에 찔려 살해된 사건과 관련하여 흉기 소지 및 증거인멸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당시 검찰은 또 다른 용의자인 에드워드 리를 진범으로 보고 살인죄로 기소했으나 법원은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했고 징역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던 아더 패터슨은 1998년 특별사면을 받고 당국이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태원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은 1997년 4월 3일이고 2012년 4월 2일 공소시효가 완성되는데, 현재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범죄인도재판이 공소시효 완성전에 끝나지 않는다면 아더 패터슨을 우리나라 법정에 세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검찰은 아더 패터슨이 출국한 1998년 8월 24일부터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정지된 것으로 보고 기소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만 회의적인 의견도 많습니다.

또 한 가지는, 최근 영화 ‘도가니’를 통해서 전 국민의 관심 대상 1호가 된 광주 인화학교의 성폭력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성폭력 범죄, 특히 아동 대상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 서명 운동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공소시효는, 범죄 후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범죄인에 대한 사회적 처벌 욕구가 감소하거나 범죄인이 심리적으로 처벌받은 것과 같은 효과가 있고, 장기간의 경과로 증거가 없어지거나 발견이 어려워 범죄를 입증하기 곤란하므로 국가의 소추권을 소멸시킨다는 취지로 제도화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날이 갈수록 범죄는 지능적이고 흉악해져서 시간의 경과로 인해 범죄인에 대한 일반인의 처벌 욕구나 의지는 오히려 더 강력해지고, 과학수사기법의 발달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소시효 제도에 대한 수정도 불가피해졌습니다.

범죄를 행하였으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일반인의 법감정 그리고 정의관념에 부합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공소시효제도는 어쩌면 정의에 반하는 제도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인권뿐만 아니라 범죄인의 인권과 신뢰도 보호해야할 중요한 가치라는 점에서 공소시효 제도가 무용한 것은 아니라 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형사소송법상 일부 흉악범죄와 성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기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짧고 일부 국가에서는 아예 배제시킨 경우도 있다는 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특히 아동대상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논의는 지금 시점에서의 논의가 조금은 늦은 감이 있다고 느낄 정도로 시급한 현안입니다.

성폭력 범죄는 대부분 친고죄로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고 고소를 하려면 고소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판례를 보면 대체로 13세 정도 되어야 고소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는데, 만약 성폭력을 당한 만 5세의 아동이 10년이 지난 후인 16세에 자신이 당한 행위의 의미를 알고 가해자를 고소하고자 하여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할 수 없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서 피해자임에도 평생 죄인처럼 살아가야 하는 아동들, 그리고 그 옆에서 동일한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아동의 가족들을 떠올려보면, 그들 앞에서 감히 범죄자의 인권을 운운하는 것이 사치스럽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공소시효 제도는 법적안정성을 위해 정의를 양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의 필요악이라는 점에서 일반 국민의 법감정에 어긋나지 않게 합리적으로 운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임주영 변호사 약력-
광주대성여자고등학교 졸업
전남대학교 법학과 졸업
제48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38기 수료, 사법연수원 조세법학회 정회원
서울지방변호사회 입회
광주지방변호사회로 소속 변경
전남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현) 광주시 지방세 심의위원
현) 광주시 교육청 교육소청심사위원